July152010

  너무 오래 전에 읽어서 이제는 줄거리조차 희미한 작품이지만, 아직도 생생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교실로 쓰는 교회 건물이 좁고 낡았으니 학생을 80명만 받으라는 주재소의 명령에 따라 영신은 배움에 굶주린 학생들을 억지로 내쫓는다.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무심히 창밖을 내다본 영신은 깜짝 놀란다. 쫓겨난 아이들이 머리만 내밀고 담에 매달려 있는가 하면, 나무에 올라가 교실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감격한 영신은 아예 칠판을 밖으로 옮긴다. 그리고 칠판에 커다랗게 적는다. 

  ”아무나 오게, 아무나 오게”

  나는 지금 외국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밖에서 접하는 나라 안 소식이 하나같이 다 어둡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인 것은 어린 자식 셋을 데리고 동반 자살한 어머니에 관한 기사다. 

  무모한 모정에 대한 비난이 혹독하지만, 아마도 두고 가는 자식들도 결국은 자신처럼 ‘안’의 세계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절망감이 죽기 싫다고 아우성치는 아이를 밀치고 세 살짜리 어린아이까지 안고 뛰어내리게 했는지도 모른다. 돈 많고 힘 있는 사람끼리 모여 동그랗게 금 그어 놓고 아무도 못 들어오게 밀쳐내며 사는 이 세상에 자식들을 두고 가기가 너무나 무서웠는지도 모른다.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작품 중에서 유독 “아무나 오게, 아무나 오게”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그 말이 주는 너그러움이, 따뜻함이, 그리고 그 아름다움이 낯선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장영희 著 <문학의 숲을 거닐다>

갈수록 금은 두꺼워지고 그 위에 울타리까지 세워지니, 이 시대에 “아무나 오게, 아무나 오게”라는 말을 해 줄 사람이 있을까 - ri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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